오뉴월 서릿발보다 무서운 복수 단편

오뉴월 서릿발보다 무서운 복수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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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뉴월 서릿발보다 무서운 복수
난 지금 오십대의 남자이다.
난 이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총각시절 내 마음을 송두리째 주었던 여자가 변심을 하자 믿은 여자가 없다고 생각하고 독신으로 살아 온 것이다.
다만 엔조이 차원으로 여자와 만나기는 한다.
하지만 그런 만남은 그 만남 자체부터가 내 욕정을 풀기 위한 무미건조한 성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몰론 요즘 여자들도(처녀고 가정주부고 간에 동일함)나처럼 엔조이를 위하여 만남을 가지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 엔조이를 위하여 만나 여자 가운데 하나가 결혼 날짜를 받아두고서 나의 아기를 임신을 하였다면 어떻게 하냐고 하소연하고 있다.
내가 고의적으로 임신을 시켰다고는 생각을 하지도 못 할 것이지만.........
그런 그 사연을 내 입을 통하여 한 번 하겠으니 들어 달라.

내가 사랑이란 것을 처음으로 아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것은 군대에 다녀오고 복학을 하고 나서였다.
내가 군대에 가 있던 사이에 입학을 한 후배였지만 군대에 다녀 온 탓에 같은 학년인 후배로서 이름은 한 봉선이라고 불렀지만 동아리에서는 모두가 그녀를 부를 때 봉선화라고 부를 만큼 봉선화보다도 아름다워 너나 할 것 없이 봉선화라고 불렀다.
그리고 얼마나 순진 무고하게 생겼던지 감히 그 어떤 동아리 멤버들도 그녀에게 범접을 못 하고 쩔쩔 맬 정도였고 심지어 동아리 회장은 봉선화가 탈퇴를 하면 동아리 멤버들 대부분이 따라서 탈퇴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마치 중전마마 모시듯이 행사 때면 가장 상석을 배정 할 정도로 극진하게 대접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내가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하여 동아리 모임에 참석을 하기 되자 내 옆에만 항상 있었고 동아리 멤버들은 그런 나를 부러워하다 못 해 질투까지 하는 멤버도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나 역시 네 곁에서 있는 그녀가 고마웠고 좋았으나 차마 한 떨기 봉선화보다도 아름다운 그녀를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를 몰라 쩔쩔 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그러면 봉선화는 나에게 기운을 내라고 독려를 하였고 그 힘에 나는 삼학년에 올라가면서 동아리 회장을 맡게 되었다.

회장이라는 감투는 나로 하여금 봉선화와 더 가까워지기 만들어 주었다.
임명직이던 여학생 대표로 지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동아리 모임을 핑계로 동아리 모임이 아닌 자리에서도 만나게 된 것이었다
동아리라는 단체 활동에서 만남과 동아리 모임을 핑계로 하지만 따로 만나게 됨으로서 봉선화와 나의 사이는 서로가 더 가깝게 다가왔다.
둘만의 술자리도 만들기도 하였다.

빈틈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봉선화도 술자리에서는 흐트러졌다.
그 흐트러짐은 나에게 용기를 주었고 그 용기는 손을 잡게 만들더니 급기야는 서로의 입술을 탐하는 사이로 발전을 하였다.
그녀는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지키고 싶다고 하면서 그 이상은 절대 허락을 하지 않았고 저도 그녀의 결혼이란 말에 감동을 받은 나머지 적어도 결혼식 당일까지는 아껴두고 싶었다.
대신 가벼운 페팅은 허락을 하였고 저는 키스를 하면서 젖가슴을 주무르거나 엉덩이를 어루만지기도 하고 허벅지를 쓰다듬기도 하였다.
뿐만 아리라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귓불을 질겅질겅 씹어대며 빠는 것은 저에게도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물론 그런 행위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아주 으슥한 골목이나 학교 뒤편의 나무숲속에서 주로 이루어졌고 그렇게 분위기가 좋은 곳에서는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신음을 토하기도 하였다.

제가 대학 사학년에 다니면서 취업을 하자 그녀는 저에게 아주 색다른 행위들로 저를 아주 만족을 시켜주었다.
취업 축하 선물이라고 하면서 저 바지 속에 손을 넣고 제 좆을 주물러 준 것이 첫 선물이었다.
그리고 첫 출근을 하였다가 근무를 마치고 나서 한 데이트에서는 저의 좆을 끄집어내더니 한 동한 신기하다는 듯이 깔깔깔 웃어대며 바라보기만 하더니 어디서 어떻게 알았던지 좆을 잡고 용두질을 쳐서 좆 물이 나오도록 만들었고 좆 물이 나오자 손가락 끝에 묻히더니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고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이어 놀랍게 그 손가락 끝에 묻은 좆 물을 혀에 대어보고는 역겨운 듯이 구토를 하더니 휴지로 닦아내고는 저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좋았냐고 물었다.
저는 대답 대신 그녀를 끌어안고 깊은 키스를 해 주었다.
그렇게 발전을 한 그녀의 페팅은 제가 첫 월급을 받은 날 절정에 달하였다.
저의 좆을 빨면서 흔들어 주었고 좆 물이 나오자 아무 거리낌도 없이 삼켰으니 말이다.
그때까지도 저는 그녀가 저를 몹시 사랑한 나머지 저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이라면 빠구리 전까지는 모조리 해 주고 싶어 하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저를 배신하기 위하여 사전에 포석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우리 보모님들이 교육자들이시라 우리 집안에는 교육자가 많은 교육자 집안인 반면 그녀의 조기 퇴직을 한 아빠는 거의 전 재산을 제약회사를 투자를 하고 있어서 그녀의 부모님들은 교육자 집안보다는 대형 병원을 운영하는 남자에게 시집으로 보내고 싶어 하였다.
직업이 안정이 된 좋은 사위도 보고 또 그 대형 병원과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를 한 제약회사의 주식이 올라 부를 창출하게 하는 소위 꿩 먹고 알 먹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시에 그녀도 부모님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을 몰랐던 저는 남들이 존경을 하는 교육자 집안이라 그녀의 집안에서도 반대를 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을 하지도 못 하였다.

그런데 봉선화와 저 사이에는 또 다른 커다란 사건이 벌어졌다.
그해 연말 소위 망년회를 그녀와 나는 오붓하게 한 것이다.
교육자이셨던 우리 부모님을 일본에 살던 제자가 마침 방학이라며 초대를 하여 집에는 저 뿐이었고 저는 그녀를 꼬드겨 우리 집에서 망년회를 하자고 하였고 그녀도 선뜻 동의를 하였기에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그녀를 저희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부모님이 청렴한 교육자이셨기에 저택은 아니었지만 초라한 그런 집도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의 야욕을 몰랐기에 이리 집에 방문을 하고는 시집을 올 집이 수수하지만 초라하지 않다면서 좋아하였다.

“오빠 마주 앉아서 마시니 기분이 이상 해 마치 생면부지의 모르는 남자와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아, 옆으로 와 어서”탁자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서 술을 마시다가 어느 정도 취기가 돌자 느닷없이 봉선화가 저에게 말하였다.
“그래? 그렇지”잔을 들고 봉선화 옆으로 가서 앉으며 말하였다.

빠구리만 하지 않았다 뿐이고 아~저의 경우 우리 봉선화 보지를 보지도 못 하였다는 사실이 이제야 생각이 나는 군.
봉선화의 경우 저의 좆을 보고 만지고 빨기까지 하였지만 저의 경우 봉선화 보지를 겨우 팬티 위로 문지른 것이 최고였다.
그 이상을 봉선화는 허락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까지 한 저와 봉선화가 마치 생면부지의 사람들처럼 마주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저가 생각하여도 보기에 좋지 않다고 생각 하던 차에 봉선화의 제안은 저로 하여금 말초신경가지 자극 시키는 기폭제 노릇을 하기에 충분하였다.

“아~오빠 오늘 밤은 길어 너무 급하게 굴지 마”봉선화 옆으로 앉은 저는 앉자마자 봉선화의 미끈한 허벅지 위에 손을 얹고 쓰다듬자 눈을 흘기며 말을 한 것이다.
“그래? 그런데 네 옆에 이렇게 다정하게 앉으니 이게 가만있지를 못 하고 있어”턱으로 텐트를 치고 있는 바지 중앙을 가리키며 말하자
“이게 벌써부터 주책을 부린단 말이지”봉선화가 저의 바지 중안에 친 텐트를 툭툭 치며 말하였다.
“선화야 오늘은 기어코 너를 내 여자라는 것을 확인을 시키고 싶어”솔직하게 저는 제 마음을 봉선화에게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고 말았다.
“마음은 항상 오빠 곁에 있잖아?”봉선화가 환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알아! 하지만 아직 너와 난 마음은 한결같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그걸 증명을 할 길을 없잖아?”하고 말하며 스커트 안으로 손을 넣자
“오빠 그렇게 하고 싶어”스커트 안으로 들어온 손의 팔목을 잡으며 봉선화가 물었다.
“하고 싶다기보다는 선화 네가 내 여자임을 분명히 하고 싶다는 뜻이야”하고 말하며 손에 힘을 주어 스커트 안으로 깊숙이 침입을 시도하자
“오빠 그럼 오빠가 변심은 안 한다고 약속을 하겠어?”팔목에서 손을 때며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해”대답을 하는 저의 손은 이미 봉선화 보지근처 아니 정확하게 말하여 팬티 옆을 제키고 처음으로 봉선화의 보지 털을 만지고 있었다.

“아~오빠 이상 해”봉선화가 저의 머리를 끌어안더니 젖가슴 사이로 당겨 포근한 느낌을 가지게 만들어주며 말하자
“나도 너무 좋아”하고 말하며 블라우스 단추에 손을 대고 있었고
“오빠 하지 마”봉선화는 단추를 풀고 있는 제 손을 잡고 있었지만 단추를 풀기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 정도였다.
아~! 또 한 가지 빠졌었군.
봉선화의 젖가슴을 손을 가슴에 넣고 만지고 주무르고 젖꼭지를 매만지기까지는 하였지만 저의 이술을 허용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걸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봉선화를 남마고 거의 삼 년 정도가 지나서야 드디어 저는 탐스러운 봉선화의 젖가슴을 눈앞에서 보게 되었고 그리고 빨게도 되었다.

“아~흑 오빠”봉선화는 제가 자신의 젖꼭지를 물고 빨기 시작하자마자 몸을 파르르 떨며 몸부림을 치기 시작하였다.
“쪽~쪽~쪽~”봉선화의 신음은 저로 하여금 더 힘차게 빨도록 만들었다.
“아~흑 오빠 잠시만”봉선화가 갑자기 저의 얼굴을 밀치며 말하였다.
“왜?”하고 물으면서도 저는 봉선화의 팬티 안에 넣은 손으로 보지 털을 매만지고 있었다.
“오빠 사살 나 처녀가 아니야”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말이 봉선화 입에서 나왔다.
“아.......아니 뭐라고?”놀란 토끼눈을 하고 봉선화를 보며 말하자
“주.......중학교 삼학년 때 멋모르고........”봉선화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흐리자
“누구야?”여전히 논란 토끼눈을 하고 묻자
“아는 오빠였는데 딱 한 번 했어, 미안 해”고개를 들지도 못 하고 대답을 하였다.

실망도 그런 실망이 없었다.
믿으실지 모르지만 저의 경우 대학을 졸업할 나이가 되었어도 동정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거든.
그런데 한 떨기 봉선화처럼 아름답고 화려하게만 보이던 우리 봉선화가 숫처녀가 아니란 사실은 정말이지 믿기 어려울 아니 믿고 싶지 않은 그런 기분이었다.

“사람이 실수가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성인이지”말초신경을 자극 시킬 정도까지 오르지만 않았더라면 저는 아마 봉선화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한 번의 실수로 처녀를 잃어버렸다고 하지만 여러 번도 아니고 단 한 번 하였다는 말은 그 당시에도 대학을 졸업을 할 때까지 숫처녀로 지내는 여자를 찾기 어렵다고 할 시기였기에 용인을 하기로 한 것이다.
“고마워 오빠”봉선화가 다시; 제 머리를 끌어안았고 봉선화 품에 안긴 저는 다시 봉선화의 젖꼭지를 빨기 시작하면서 팬티 속가지 침입을 한 손가락으로 살며시 보지구멍으로 짐작이 되는 부분에 대고 가볍게 눌러보았다.

“아~오빠 조금 아파”손가락 끝이 들어갔으나 그다지 미끄럽지도 않고 쉽게 들어가지지도 않았으며 봉선화가 저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리자
“봉선아 하자”젖꼭지에서 입을 때고 스커트를 들치고 팬티를 당기며 말하였다.
아마 제 손가락이 아주 손쉽게 미끄러지듯이 들어갔더라면 제 생각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봉선화의 보지구멍은 봉선화의 말처럼 한 번 그도 중학교 삼학년 때 실수로 처녀를 주었고 그 뒤로 다른 어떤 남자의 좆도 받아들이지 않은 탓에 처녀막이 없다 뿐이지 숫처녀나 다름이 없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이다.

“아~오빠 아파 잠간만 있다가 하면 안 돼?”알몸이 된 제가 봉선화 몸 위에 올라타고 좆을 박자 아주 빡빡한 느낌이 드는 것과 동시에 봉선화가 미간을 찌푸리며 제 가슴을 밀쳤다.
“그래 그러자”무려 삼 년이란 세월을 기다린 끝에 저는 사랑하는 봉선화의 보지구멍에 좆을 박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게 하여 완전하게 저의 여자가 되어버린 봉선화의 보지구멍은 제가 원하면 언제라도 봉선화는 벌려주었고 하루라도 빨리 봉선화 집으로 인사를 가서 승낙을 받고 싶은 나머지 저희 집에 먼저 오게 하여 우리 부모님들로부터 승낙을 받고 봉선화도 자기 부모님들에게 저의 존재를 알리고 저의 방문을 승낙하시기를 학수고대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도 봉선화는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지 못 하였다면서 발뺌을 했다.

그런데 졸업식 날 그 어디서도 저는 봉선화의 얼굴을 보지 못 하였다.
요즘이야 휴대폰을 개나 소도 가지고 있지만 당시에는 휴대폰이 나오지도 않았고(나왔으나 아주 일부 특권층만 사용한 것을 최근에 알았음)삐삐가 가장 보편화 된 연락 수단이었지만 봉선화에게 삐삐를 수 십 통을 때렸지만 대답은 없었다.
큰마음을 먹고 봉선화 집으로 전화를 걸고 바꾸어 줄 것을 요청하자 대답도 하지 않고 끊어버리더니 그 후로는 전화를 걸고 여보세요 라고 하기만 하면 무조건 끊어버렸다.

졸업식 보름 후 우리 집으로 한 통의 발신인 이름도 없는 편지가 내 앞으로 왔다.
분명한 것은 봉선화의 필체였다.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난 그 편지를 볼에 대고 비비며 눈물을 흘렸다.
한편으로 그 내용이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다른 좋지 않은 내용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뜯기가 무서웠다.
하지만 궁금증이 우선이었다.
!!!!!!!!!!!!!!!!!!!!!!!!!!!!!!!!
이 무슨 되도 않은 내용이란 말인가.
나와 만나지 못 한 사이에 부모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 커다란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집안의 의사 아들과 맞선을 보았고 결혼을 하기로 했다면서 자신을 잊고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라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의 편지였다.

어렵게 취업을 한 회사에 사표를 내었다.
두문불출하고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겨우 목숨만 유지를 할 만큼만 먹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고민에 빠졌다.
몇 날 몇 칠을 고민을 하였지만 뾰쪽한 정답은 없었다.
다시 한 달이 지났다.]
풍문에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낮이면 고민에 빠졌다가 해가 지기 무섭게 술로 마음을 달래야만 하였다.
처음엔 해만 지면 마시던 술이 봉선화가 결혼식을 올렸다는 소식을 듣는 것과 동시에 해가 머리 위에 있을 때부터 술로 살기 시작하였다.

보모님의 걱정만 늘어갔다.
아버지의 제자가 내가 사표를 내었던 직장에서 제법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는 그분을 통하여 나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술도 사주고 밥도 사주며 나의 고민을 조용히 경청을 하여주었다.
그리고 그분이 나에게 내가 갈 길을 어드바이스 해 주었다.
힘을 내어 분발을 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힘을 길러 철저하게 복수를 하는 길만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말이다.
다시 복직을 하였다.
난 아주 딴 사람으로 변하여 있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도 한 방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냉정한 사람이 되어있었고 원칙이 아닌 것은 아무리 나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협박이 들어와도 내가 갈 길로만 가는 우직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봉선화가 불렀던 이름인 강 민호라는 이름도 싫어 강 호철이라는 가명을 만들어 사용을 하였고 공식적인 서류가 아니면 호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고 사무실에서도 그 이름을 주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증오심만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나의 가슴 한 쪽에는 봉선화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어떤 소식통을 통하더라도 난 하루에 한 번 이상 봉선화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였고 그날그날 일기장에 적어두었다.
봉선화가 결혼을 하고 일 년 반이 조금 안 되어서 딸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사년이 지난 날 난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봉선화 아빠가 투자를 하였던 제약회사의 주의 주가가 거의 종잇조각으로 변하여버린 것이다.
그리고 살던 집까지 은행이 근저당을 하여 빌려 투자를 한 바람에 거리로 나 앉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것 같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다시 얼마 안 되어 남편으로부터 쥐꼬리만큼의 위자료를 받고 딸을 호적에서 파 가는 조건으로 이혼을 당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다시 내 마음은 흔들렸다.
내 마음 한 쪽에 남아 있던 그리움이 나로 하여금 이혼을 당한 봉선화를 내가 그녀의 딸과 함께 거두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제자인 직장 상사에게 나의 고민을 실토하고 상담을 받았다.
그건 그녀에게 무릎을 꿇고 백기 투항을 하는 것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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